설교일  :  2009.8.8
설교제목  :  Jacob 의 Deathbed
성경구절  :  2009여름수양회(6-Day IV [朝])-창세기
설교자  :  염재현
설교내용

6-Day IV [朝] ' Jacob 의 Deathbed ' (Oak 20090806-1)


The book of Genesis is one vast graveyard, one great handbook of funeral sermons, one long obituary. We have read the register of births and deaths in chapter 5 and attended the funeral services of Abraham, Sarah, Isaac, and we have wept with Jacob at Rachel's tomb. We have missed this one and that. "Where 's Rebekah? Where's Terah? Where's Lot?" And always the answer comes, "They're dead." Now we come to the last two funerals in the book. ( j p )
창세기는 하나의 커다란 묘지이고, 하나의 큰 장례식의 설교 핸드북(manual)이고, 하나의 긴 부고(訃告)입니다. 우리는 5章에서 탄생과 사망의 등기기록을 읽었고 아브라함과 사라와 이삭의 장례식에 참석했고, 라헬의 무덤에서 야곱과 함께 울었습니다. 우리는 이사람 저 사람이 그리워집니다. 리브가는 어디 있지? 데라는? 롯은? 그런데 늘 나오는 대답은,그들은 죽었노라, 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책에서 마지막 남은 두 장례식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Gen.49:1 And Jacob called unto his sons, and said, Gather yourselves together, that I may tell you that which shall befall you in the last days. 그리고 야곱이 자기 아들들을 불러 말하기를, 너희는 다 함께 모이라. 마지막 날들에 너희에게 닥칠 일을 내가 너희에게 말하리라.
2. Gather yourselves together, and hear, ye sons of Jacob; and hearken unto Israel your father. 너희는 함께 모여서 들으라, 너희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비 이스라엘에게 귀를 기울이라.

The final scene (portrayed in Gen.49) presents a fitting climax, and demonstrates the power of God's grace. The whole family is gathered about the dying patriarch, and one by one he blessed them. All through his earlier and mid life, Jacob was occupied solely with himself; but at the end, he is occupied solely with others!
창세기 49장에 서 보여주고 있는 이 마지막 장면은 클라이맥스에 잘 어울리는 장면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잘 들어내 주고 있습니다. 온 가족이 임종하는 가장(家長)의 주변에 모였고, 그는 한시람 씩 그들에게 축복합니다. 야곱은 그의 초년과 중년을 전적으로 그 자신의 일에만 전념했지만, 그 마지막은 다른 사람의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In days gone by, he was mainly concerned with planning about things present; but now, he has thought for nothing but things future! One word here is deeply instructive: "I have waited for thy salvation, O LORD" (49:18).
지나간 날들에는 그는 닥치는 일들에 대해 계획세우는 일이 主 관심사 이었었으나, 지금은 다가올 일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 18節에서 "오 여호와 하나님 主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라는 한 마디는 깊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At the beginning of his life "waiting" was something quite foreign to his nature: instead of waiting for God to secure for him . . . to obtain it for himself. . .
그의 인생이 시작할 때에는 그의 성품에서 "기다린다는 것"은 아주 낯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서 마련해 주시는 것을 기다리는 대신에 스스로 그것을 구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But now the hardest lesson of all has been learned. Grace has now taught him how to wait. He who had begun a good work in Jacob performed and completed it. In the end grace triumphed. At eventide it was light.
그러나 이제는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그 교훈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이제 은혜가 그에게 기다리는 법을 가르친 것입니다. 야곱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이 그것을 행하시고 이루신 것입니다. 마침내 은혜가 승리한 것입니다. 황혼에 그것은 빛입니다.

May God deepen his work of grace in the writer and reader so that we may "lay aside every weight, and the sin which doth so easily beset us, and run with patience the race that is set before us" (Heb.12:1).
하나님께서 나와 여러분에게 은혜를 깊게 역사하시어, 우리로 "모든 무거운 짐과 우리를 쉽게 에워싸는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인내로 달려가도록" (Heb.12:1)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Arthur W. Pink)

3. Reuben, thou art my firstborn, my might, and the beginning of my strength, the excellency of dignity, and the excellency of power: 르우벤, 너는 나의 맏이요, 나의 능력이며, 내 힘의 시작이요, 위엄이 탁월하고, 능력이 탁월하나
4. Unstable as water, thou shalt not excel; because thou wentest up to thy father's bed; then defiledst thou it: he went up to my couch. 물처럼 불안정해서 너는 뛰어나지 못하리니, 이는 네가 네 아비의 침상에 올라가서 그것을 더럽혔음이라. 그가 나의 침상에 올라갔었도다.

Unstable. Like water! Like water that always seeks its own level no matter how low that might be, water that when spilled upon the ground cannot be gathered again. "Thou shalt not excel." All Reuben's rosy daydreams exploded in his face. There was nothing in his character that could fit him to be leader of the tribes; he simply did not have what it would take. He lacked character, he lacked courage, he lacked conviction, he lacked everything.
불안정해서. 물과 같이! 물과 같은 것은 아무리 낮다 할지라도 늘 그 자신의 위치를 찾아 가기 때문에, 물이 땅에 엎질러지면, 다시는 모아질 수 없는 것입니다. "너는 뛰어나지 못하리라." 모든 루벤의 장미 빛 백일몽(白日夢)은 그의 얼굴에서 깨져 나갔습니다. 그의 품성에는 그가 지파들의 지도자가 되기에 적합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는 필요한 자질을 전혀 갖추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인격이 못 미쳤고, 용기도 부족했고, 신념도 모자랐고, 모든 것이 뒤쳐졌던 것입니다.

"Thou wentest up to thy father's bed; then defiledst thou it: he went up to my couch." It had taken a long time to come, but now that axe, poised unseen over Reuben's unsuspecting head all those years, fell with all the weight of divine wrath.
"너는 네 아비의 침상에 올라가서, 그것을 너는 더럽혔느니라. 그는 내 침상에 올랐도다." 여기까지 오기에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오랜 세월을 눈치 채지 않고 넘어가리라 믿던 루벤의 머리위에서, 눈에 띄지 않게 맴돌던 도끼가 하나님의 내리누르는 분노와 함께 떨어진 것입니다.

The sin had taken place forty years ago. There had been plenty of time for repentance and confession. There had been twenty-two years in Canaan and seventeen years in Egypt — time enough for Reuben to weep out his sorrow and shame to his father. But there had been nothing, nothing but a big cover-up and furtive look in his eye every time he looked either at Bilhah or Jacob. So Reuben reaped what he sowed.
그 죄는 사십년 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 동안 회개하고 고백할 많은 기회가 있었던 것입니다. 가나안에서 스물 두해 그리고 애급에서 열 일곱해 — 루벤이 그의 아버지에게 그의 후회와 부끄러움을 울며 고백할 시간은 충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이 지났습니다. 단지 매번 빌하나 야곱을 볼 때마다 그의 눈빛 속에는 커다란 은폐와 눈속임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렇게 되어 루벤은 그가 씨 뿌린 것을 걷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Here at the judgement seat unconfessed sin was exposed and deal with, and Reuben, left with no space for repentance, looked forward to the coming kingdom with his hopes of glory in broken fragments at his feet.
여기 심판석에서 고백되지 않은 죄가 들어나고 처리되고, 그리고 회개할 기회를 놓친 루벤은 그의 발바닥아래에 깨어져 조각난 그의 영광의 소망을 들고 다가오는 왕국을 고대하게 되었습니다.

So we see Jacob's sons gathered about his bed. We view the scene as the judgment seat of Jacob, and it prefigures the judgment seat of Christ. Lives are brought up for review and rebukes and rewards are meted out. What has been sowed must be reaped. Hidden things are exposed and judged; open things are praised or punished. There is a place in a Kingdom at stake for each one, and each one is weighed in the light of that.
이와 같이 우리는 야곱의 아들들이 그의 침상 주변에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 눈에는 그 장면이 야곱의 심판석으로 비쳐지고, 그리스도의 심판석의 예시로 보여 집니다. 살아온 것이 재조명(再照明)되기 위해서 다시 불려 내지고, 그리고 꾸중과 상이 내려집니다. 씨 뿌려진 것이 반드시 거두어 지고 있습니다. 숨겼던 것이 드러나고 심판 받습니다. 드러난 일들은 칭찬을 듣거나 벌을 받습니다. 왕국에는 각자의 문제를 걸어야하는 장소가 있고, 각자는 그것에 따라 저울질 됩니다.

Jacob's style of speech was not the usual conversational style. It was a declamation couched in poetic, symbolic, and exclamatory phrases such as would cause a deep hush of awe, fear, and expectation to grip each heart. It was, indeed, a judgement seat.
야곱이 말하는 모습은 평상적인 대화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적이고 상징적으로 표현된 연설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감탄조의 표현은 경외의 깊은 침묵과 두려움을 가져오고, 모든 사람의 가슴을 휘어잡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참으로 그것은 심판 자리인 것입니다. ( j p )


2Cor.5:9 Wherefore we labour, that, whether present or absent, we may be accepted of him. 그러므로 우리가 애쓰는 것은, 거하든지 떠나 있든지, 그분께서 받아주시는 자가 되고자 함이니라.
10. For we must all appear before the judgment seat of Christ; that every one may receive the things done in his body, according to that he hath done, whether it be good or bad. 이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출두하여, 선이든지 악이든지, 그가 행한 것에 따라, 그의 몸 안에서 행한 것을 받기 때문이니라.

This judgment is a serious affair. There will be both rebukes and rewards. Some have tended to water down the solemnity of this judgement. Paul vests it with awesome solemnity. It is not a mercy seat to which we are to be summoned, but a judgement seat.
이 심판은 하나의 진지한 사건입니다. 거기에는 꾸중과 상이 함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이 심판의 엄숙함을 적당히 물 타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심판에 두려울 정도의 엄숙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출두하게 된 그 자리는 시은좌(施恩座)가 아니고 심판석(審判席)인 것입니다.

Our performance in the family will determine our position in the kingdom. We are going to have to face the things we have done in our mortal bodies, both the bad and the good. When Paul was being tried for high treason by Nero, he could say to Timothy "only Luke is with me" (2Tim.4:11). Of Demas he had to record "Demas hath forsaken me, having loved this present world" (v.11).
우리가 집안에서 한 일들이 그 왕국에서 우리의 위치를 결정할 것입니다. 좋은 일이 건, 나쁜 일이 건 간에 두 경우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육신 안에서 행한 일들을 대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바울이 네로에 의해서 대역죄로 재판을 받게 되었을 때, 그는 디모데에게, 누가만이 나와 함께 있노라, 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데마에 대해서 그가 기록하기를, 데마는 이 현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렸노라, 고 하고 있습니다.

It must surely be evident that the two men will fare differently at the judgement seat of Christ. We are going to be held accountable for what we have done with our time and our talents, with our money and our influence, with our opportunities and advantages.
이 두 사람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다른 대접을 받게 될 것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우리들은 우리가 우리의 시간으로, 우리의 재능으로, 우리의 돈과 영향력으로, 우리의 기회와 유리한 조건으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게 될 것입니다.

There will be rebukes and rewards. Then all tears will be wiped away but our position in the kingdom will be set. The Lord's parable of the talents (Mt.25:14-30) has its bearing on these things.
거기서 꾸중과 상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모든 눈물이 씻겨 질 것입니다마는 우리의 그 왕국에서의 지위도 결정될 것입니다. 主님의 달란트에 대한 비유(마태복음 25:14-30)는 이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 j 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