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일  :  2011.8.16
설교제목  :  요한복음이 주어진 이유는
성경구절  :  요한복음 1:1-18
설교자  :  염재현
설교내용

2011 夏 [I] John 1:1-18 ' 요한복음이 주어진 이유는 '


1. 요한복음의 배경

❖ His brother James was dead. Peter, the leading apostle to the Jews, was dead. Paul, the intrepid apostle to the gentile world, was dead. Thomas, Andrew, Philip, Nathanael, all the apostles, were dead— all except one. There in Ephesus lived a lonely old man, the first and the last of the apostles, the great apostle to the church. His name was John. He was a charter member, now the last one left.
그의 형제 야고보는 죽었고, 유대인을 향해 주도적 위치에 있었던 사도 베드로도 죽었습니다. 이방인의 세계를 향했던 대담무쌍한 사도 바울도 죽었습니다. 도마, 안드레, 빌립, 나다나엘, 모든 사도들도 죽었습니다— 단 한사람만 제외하고는 모두 죽었습니다. 에베소에 한 외로운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에 대해 위대한 사도였으며, 최초의 사도이자 제일 마지막 사도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습니다. 그는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창립멤버였습니다.

❖ It was now the third generation. The ominous warnings of Paul, Peter, and Jude about a coming apostasy in the church, about "grievous wolves, not sparing the flock," were no mere alarmist fancies. By the time of the third generation all kinds of heresies were being spread about.
이제 제삼세대가 되었습니다. 바울, 베드로, 그리고 유다 [의 서간서]에 의한 다가올 교회 안의 배교와 "양들을 아끼지 않는 통탄할 이리들"에 대한 불길한 경고가 쓸데없이 걱정을 하는 사람들의 단순한 환상이 아니었습니다. 그 제삼세대 때에는 모든 종류의 이단들이 퍼져나가고 있었습니다.

❖ The third generation always brings particular problems for a movement. In the first generation a perceived truth is a conviction; in the second generation it settles down to belief; in the third generation it becomes merely an opinion. John could clearly see this declension. It was evident on every hand.
제삼세대는 항상 그 움직임에 있어서 특별한 문제들을 야기했습니다. 제일세대에서는 진리를 확신으로 받아들였고, 제이세대에서는 그것이 믿음으로 정착했습니다. 그러나 제삼세대에서는 그것은 단지 선택사항이 되고 말았습니다. 요한은 분명하게 이 내리막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방면에서 분명했습니다.

❖ All the books of the New Testament were written except his own gospel, three short epistles, and a remarkable apocalypse. Three gospels, the book of Acts, Paul's epistles, and the general Hebrew epistles were all in circulation. Doubtless John was at home in them all.
그 자신이 쓴 복음서와 짧은 세 서간과 놀라운 계시록을 제외하고 신약의 모든 성경이 이미 쓰여졌습니다. 세 복음서와 사도행전, 바울의 서간들, 그리고 일반적인 히브리 서간들이 모두 이미 유포되고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요한은 그 모든 것에 정통하고 있었습니다.

❖ So why write another gospel? His friend all colleague Matthew had written such a masterpiece. John Mark—he knew him well—had given a precise account of Peter's preaching. Luck had written a Christian classic. So why was the Holy Spirit urging him to write? Because so much was still unsaid.... The other gospels prepared their hearers for the kingdom of heaven, but what about the deeper mysteries Christ had taught? Many of those mysteries, indeed, had subsequently been revealed to Paul. But what about their origins in Christ's teaching?
그래서 왜 또 다른 복음서가 쓰여진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의 동료 마태가 이미 그런 걸작을 썼고, 그가 잘 알고 있는 요한 마가도 베드로의 설교를 정확하게 설명한 복음서를 썼습니다. 누가는 그리스도인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복음서를 썼습니다. 그런데 왜 성령께서는 그에서 또 복음서를 쓰라고 재촉했을까요? 왜냐하면 아직도 언급되지 않은 것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 나머지 복음서들은 읽는 이들에게 천국에 대한 것을 제공했으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보다 깊은 신비한 사항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합니까? 그 신비에 관해서 많은 것이 후일 바울에게 계시되었지만, 그리스도께서 직접 가르치신 그 원래의 것은 어떻게 합니까?

❖ All kinds of false teachings were either flourishing already or soon would flourish. Soon they would have names attached to them and they would be written into church history books....
모든 종류의 거짓 가르침이 이미 널리 퍼져 넘쳤거나 곧 넘치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곧 그것들은 이름표를 달고 교회의 역사책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Apollinarianism,
-Gnosticism,
-Eutychianism,
-Nestorianism,
-Ebionism

❖ Yes, there was need for a fourth gospel, three more epistles, and an apocalypse. Only John remained with the knowledge, experience, and apostleship to write them. And so he did, rising magnificently to the occasion. He wrote his gospel out of personal experience, out of a memory quickened and clothed in inerrancy by the Holy Spirit. As a result we have in our hands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a priceless document, "written, that ye might believe that Jesus is the Christ, the Son of God, and that believing ye might have life through his name" (20:31).
바로 거기에 세복음서에 이어 네 번째의 복음서와 계시록이 필요했습니다. 요한만이 그것들을 쓸 수 있는 지식과 경험과 사도직을 가지고 있는 남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상황에 대해서 당당하게 일어나 썼습니다. 그는 그의 복음서를 개인적인 경험에서, 기억을 살려내면서, 그리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오류 없이 썼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다만 이것들을 기록한 것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함이요, 또 믿음으로써 그분의 이름을 통해서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쓴, 대단히 귀중한 “요한에 의한 복음서”를 우리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요 20:31).


2. 그 은혜

1:1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느니라.
2. The same was in the beginning with God. 그분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느니라.
3. All things were made by him; and without him was not any thing made that was made. 만물이 그분에 의하여 지어졌으니, 지어진 것 가운데 그분 없이 지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더라.

4 In him was life; and the life was the light of men. 그 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And the light shineth in darkness; and the darkness comprehended it not. 그리고 그 빛이 어두움 속에 비치되 그 어두움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더라.
9. That was the true Light, which lighteth every man that cometh into the world. 그 빛은 참 빛이었으니, 그 빛은 세상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비추는 빛이니라.
10. He was in the world, and the world was made by him, and the world knew him not. 그분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에 의하여 지어졌으나, 세상은 그분을 알지 못하더라.
11. He came unto his own, and his own received him not. 그분이 자기 백성에게 오셨으나, 그분의 백성이 그분을 영접하지 아니하더라.

3:19 And this is the condemnation, that light is come into the world, and men loved darkness rather than light, because their deeds were evil. 그래서 이것이 정죄이니, 빛이 세상 안으로 들어 왔으되 사람들이 빛보다 오히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 이는 그들의 행위가 악하기 때문이라.
 하나님의 개입

12. But as many as received him, to them gave he power to become the sons of God, even to them that believe on his name: 그러나 누구든지 그분을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이니라.
13. Which were born, not of blood, nor of the will of the flesh, nor of the will of man, but of God. 이들은 혈통으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또한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자들 이니라.

14. And the Word was made flesh, and dwelt among us, (and we beheld his glory, the glory as of the only begotten of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고,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으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8. No man hath seen God at any time; the only begotten Son, which is in the bosom of the Father, he hath declared him. 아무도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보지 못했으니,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신 독생자이신 그분이 하나님을 분명히 드러내셨느니라.

❖ There are three turning points in John's prologue, which, in fact, is really a summary of his gospel. The first key statement is found in verse 1, where John categorically state the eternal and essential deity of Christ. The second key statement is this one here, in verse 14, where John emphasizes the mystery of the incarnation—the fact that the word now assumed a new form of existence. There was a unity of the Lord's person before and after the incarnation. He did not cease to be God, the second person of the godhead at his incarnation, God the Son; but at the same time his humanity was both real and complete. He remained the same person as before, but "he became flesh." The humanity of the Lord Jesus was not something to be temporarily assumed and then later discarded. It expressed a new form of existence, not a new existence. The third key statement in this summary is found in verse 18, which closes the prologue.
요한이 쓴 첫머리에는 세 전환점이 있는데, 사실 그것은 그의 복음의 실제적 요약입니다. 그 첫 번째의 중심적 설명은 1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거기서 요한은 그리스도의 영원하고 본질적인 신성을 단언하고 있습니다. 그 두 째 중심적 설명은 여기 14절에서 등장하는데, 요한은 여기서 성육신의 신비(the mystery of the incarnation)를 강조하고 있습니다—그 말씀이 이제 새로운 존재의 형태를 떠안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육신의 전(前)과 후(後)의 주님의 인격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분은 성육신하시면서 하나님이심이, 하나님으로서 제2 위격이심이 중단(中斷)되지 않으셨고, 하나님 아들(God the Son)이셨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분의 인간성도 실재(實在)하였고 완벽했습니다. 그분은 전과 동일한 위격에 머무르고 계셨지만 "육신이 되신 것입니다." 주 예수님의 인간성은 일시적으로 취해졌다가 나중에 버려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존재로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존재로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이 요약에 있어서의 그 세 번째 중심적인 설명은 그 첫머리 말씀을 마무리하는 18절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 The birth of the Lord Jesus was unique. When any other child is born into this world, it is the creation of a new personality. A new life is created, one that never existed before. But when Jesus was born, it was not the creation of a new personality at all. It was the coming into this world of a person who had existed from all eternity. This was something new in the history of the universe.
주 예수의 탄생은 매우 독특한 것이었습니다. 보통 다른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그것은 새로운 인격이 창조된 것입니다.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 것이고 그전에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생명이 창조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태어났을 때에는 그것은 전혀 새로운 인격의 창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영원으로부터 존재하던 인격이 이 세상으로 오신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우주의 역사에 있어서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 그러면 무엇이 은혜입니까?

❖ In a message given at a Moody Bible Institute Keswick Conference some years ago, Major Ian Thomas put it like this: "He had to come as he came in order to be what he was; he had to be what he was in order to do what he did. He had to do what he did so that we might have what he has; we have to have what he has in order to be what he was." Major Ian Thomas is very good at this clever kind of definition.... That is what the gospel of John is all about.
몇 년 전 무디 성경 연구소 케스윅 학회의 한 연설에서 메이저 이안 토마스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그분은 그분이 되어야 했던 사람이 되기 위해서 오셔야 했을 때 오시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분은 그분이 하셔야 할 일을 하시기 위해서 그분이 되어야 했던 사람이 되지 않으며 안 되었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이 가지신 것을 소유하도록 그분은 그분이 하신 일을 하셔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그분과 같이 되기 위해서 그분이 가지신 것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메이저 이안 토마스는 이런 현명한 정의를 하는데 아주 훌륭했습니다.... 이것이 요한복음의 전부입니다.



He came in order to be what he was
He had to be what he was in order to do what he did
He had to do what he did so that we might have what he has
We have to have what he has in order to be what he was


이것이 바로 은혜인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고자하는 것입니다.


이번 수양회를 통해서 이 은혜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