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일  :  2011.8.17
설교제목  :  어둠의 세력
성경구절  :  요한복음 3:19
설교자  :  염재현
설교내용

2011 夏 [II] John 3:19 ' 어둠의 세력 '


1:4 In him was life; and the life was the light of men. 그 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And the light shineth in darkness; and the darkness comprehended it not. 그리고 그 빛이 어두움 속에 비치되 그 어두움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더라.
9. That was the true Light, which lighteth every man that cometh into the world. 그 빛은 참 빛이었으니, 그 빛은 세상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비추는 빛이니라.
10. He was in the world, and the world was made by him, and the world knew him not. 그분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에 의하여 지어졌으나, 세상은 그분을 알지 못하더라.
11. He came unto his own, and his own received him not. 그분이 자기 백성에게 오셨으나, 그분의 백성이 그분을 영접하지 아니하더라.

3:17. For God sent not his Son into the world to condemn the world; but that the world through him might be saved.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정죄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를 통하여 세상이 구원 되도록 하려 하심이라.
18. He that believeth on him is not condemned: but he that believeth not is condemned already, because he hath not believed in the name of the only begotten Son of God. 그를 믿는 자는 정죄되지 아니하거니와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정죄된 것이니. 이는 그가 독생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 We think next whom Jesus condemns (3:18-19). Although it is true that Christ's mission the first time was not one of condemnation, the manifestation of Christ was both a process of judgment and a sentence of judgment on those who rejected him. The purpose of his coming was to offer peace, love, joy, and the goodness and glory of God's grace. But to those who spurned all that, the product of his coming was inevitably judgment.
우리는 그 다음 예수께서 누구를 정죄하시는지 생각하고자 합니다(3:18-19). 그리스도의 임무는 처음에는 정죄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심판의 과정과 그리고 그분을 거부한 자들에 대한 심판의 판결 두 가지를 다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오신 목적은 평강과 사랑과 기쁨과 하나님의 은혜의 선하심과 영광을 주시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모두 퇴자 놓는 자들에게 그분이 오셨다는 사실이 가져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심판이 이었습니다.

A man who has a disease that a few injections can cure, but who refuses to take the injections and consequently dies of his disease, has no one but himself to blame. He spurned the remedy. What followed in his life was the inevitable outworking of law, of cause and effect. The same is true of sinners. The judgment they reap, by rejecting Christ, they bring on themselves. Christ came to offer eternal life. They chose death.
몇 대의 주사로 나을 수 있는 병이 든 자가 그 주사 맞기를 거부하고 결과적으로 그 병으로 죽었으면 그 자신 스스로의 책임일 뿐입니다. 그는 그 치료를 퇴자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의 인생에서 이어지는 것은 원인과 결과에 관한 피할 수 없는 법칙입니다. 죄인에 관해서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거부함으로서 거둬들인 심판은 그들 스스로 자초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삶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19. And this is the condemnation, that light is come into the world, and men loved darkness rather than light, because their deeds were evil. 그래서 이것이 정죄이니, 빛이 세상 안으로 들어 왔으되 사람들이 빛보다 오히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 이는 그들의 행위가 악하기 때문이라.

 ❖ Suppose a biologist were to perform an experiment by grafting at a given stage of development a butterfly to a spider and do so in such a way that the two creatures were fused into one and thus grew to maturity. What a clash of instincts there would be in a monstrosity like this. One part of the creature's nature would long for the clear vault of heaven, while the other part would crave a web in a dark corner and a diet of blood. What could be done with such a creature? Nothing, except put it to death. There is a sense in which, in the garden of Eden, Satan performed just such diabolical surgery on the human race. Part of his own personality, so to speak, was grafted onto the human personality and the product of this union is the "flesh." There is only one thing God can do to the flesh and that is to put it to death. This is exactly what He has done by identifying us with Christ in His death. The flesh is hopelessly corrupt and can produce nothing acceptable to God. (Exploring Romans, p.120)
어떤 생물학자가 어떤 주어진 생성 단계에서 나비를 거미에게 결합시키는 실험을 수행하고 있다고 상상해봅시다. 그 두 생물을 하나로 융합해서 성장시켰습니다. 그와 같은 괴물에서 얼마나 큰 본능적인 대립이 일어났겠습니까? 한쪽의 본성에서는 하늘의 둥근 천장을 그리워하고 반면 다른 쪽에서는 어두운 귀퉁이에 있는 거미줄과 흡혈을 갈망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생물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단지 죽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사단은 에덴동산에서 이와 같은 악마적인 수술을 인류에게 한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사단 자신의 성격의 일부가 인간의 성격에게 접목되었던 것입니다.

20. For every one that doeth evil hateth the light, neither cometh to the light, lest his deeds should be reproved. 이는 악을 행하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며 빛으로 나오지 아니하나니, 자신의 행위가 책망 받지 않기 위함이니라.

❖The reason why people hate the light is because of what it reveals. It shows us where we are and what we are. It shows us what a dark place the world is. It shows human beings how dark and evil they are.
사람들이 빛을 싫어하는 까닭은 빛이 드러내는 것 때문입니다. 빛은 우리에게 우리가 어디에 있고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세상이 얼마나 어두운 곳인가를 보여 줍니다. 그것은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어둡고 사악한 가를 보여 줍니다.


그래서 인간은 가능한 한 빛으로부터 멀리하고자 하나, 主께서는 이 땅에서의 사역의 마지막단계까지 이세상의 어두움에 빛을 비추시는 일을 늦추지 않으십니다.

12:35 Then Jesus said unto them, Yet a little while is the light with you. Walk while ye have the light, lest darkness come upon you: for he that walketh in darkness knoweth not whither he goeth.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아직 잠시 동안은 빛이 너희와 함께 있으니, 너희는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서 어두움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게 하라. 이는 어두움 속에 다니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36. While ye have light, believe in the light, that ye may be the children of light. These things spake Jesus, and departed, and did hide himself from them. 너희에게 빛이 있을 동안에, 너희는 그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자녀가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떠나셔서, 그들로부터 몸을 피하시니라.
37. But though he had done so many miracles before them, yet they believed not on him: 그러나 주께서 그렇게 많은 기적들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주를 믿지 아니하였으니

❖ This disbelief was no accident. It was deliberately fostered (12:37): "But though he had done so many miracles before them, yet they believed not on him." They deliberately, persistently, stubbornly tore up his credentials.
이 불신(disbelief)은 우발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고의적으로 양육된(deliberately fostered) 것이었습니다(12:37). "But though he had done so many miracles before them, yet they believed not on him. -그러나 주께서 그렇게 많은 기적들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럼에도 그들이 주를 믿지 아니하니라." 그들은 고의적으로, 지속적으로, 완강하게 그분의 신임장을 파기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손길을 은혜로 뻗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거부하는 인간의 그 불순종의 뿌리에는 우리의 자아(自我)와 그것을 조종하는 사단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Gen.3:5 For God doth know that in the day ye eat thereof, then your eyes shall be opened, and ye shall be as gods, knowing good and evil. 이는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그때에는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나님께서 아심이라.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된 원인은 사단이 인간의 자아를 부추겼고 인간은 거기에 놀아나 사단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사단은 인간의 "Self-centeredness"를 공고하게 구축하여, Humanism 이라는 틀을 만들어 놓고, 그 속에서 self-righteousness라는 기치(旗幟)를 높이 들게 하여, 사람들의 시선을 그리로 집중케 하여, 원천적으로 빛에로의 접근을 봉쇄하려는 것입니다.

❖ Only thirty-six miracles of Jesus are recorded in the gospels. But the evangelists also include summary statements showing that Jesus performed many more miracles than those specially documented. Here John mentions "so many miracles." The Lord’s public ministry was extraordinary. He performed miracle after miracle, day after day. He demonstrated his deity in countless ways, showing his lordship over the processes and forces of nature, over all kinds of sickness and disability, over hordes of evil spirits, and over death itself. Unbelief, in the face of such proof, had to be deliberately fostered.
복음서에는 단지 예수님의 서른여섯 기적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복음서기자들은 이들 특별히 문서로 입증한 기적들보다 더 많은 기적들을 예수께서 행하셨다는 것을 드러내는 간결한 언급을 또한 포함시켰습니다. 여기서도 요한은 "아주 많은 기적들 (so many miracles)" 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공생애(公生涯)에서의 사역은 특별했습니다. 그분께서는 매일같이 기적에 기적을 이어가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자연의 힘과 진행과정을 지배하는, 모든 종류의 병과 불구를 지배하는, 악한 영의 무리들을 지배하는, 그리고 죽음 그 자체를 지배하는 그분의 주권을 보여주시면서, 자신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법으로 증명하셨습니다. 이러한 증거 앞에서 불신은 의도적으로 양육되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38. That the saying of Esaias the prophet might be fulfilled, which he spake, Lord, who hath believed our report? and to whom hath the arm of the Lord been revealed?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니, 그가 말하기를,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그리고 누구에게 주의 팔이 드러내졌나이까? 하였느니라.
39. Therefore they could not believe, because that Esaias said again, 그러므로 그들이 믿을 수 없었던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말하기를
40. He hath blinded their eyes, and hardened their heart; that they should not see with their eyes, nor understand with their heart, and be converted, and I should heal them. 그분께서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눈으로 보아서는 안 되게 하시고, 마음으로도 깨닫지도, 회심하지도 그리하여 나로 그들을 치유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하였느니라.

❖ John quotes a further prophecy : "Therefore they could not believe, because that Esaias said again, He hath blinded their eyes, and hardened their heart; that they should not see with eyes, nor understand with their heart, and be converted, and I should heal them."(12:39-40). Unbelief is self-propagating. A sobering Old Testament illustration is that of Pharaoh, who continued to harden his heart until there came a time when God hardened it for him. The Jews were now guilty of similar behavior. A time comes in the lives of those who will not repent when at last they cannot repent. Israel’s persistent unbelief was clearly foretold by Isaiah. He had experienced it in his own lifetime and in response to his ministry.
요한은 한 예언을 더 인용합니다. "Therefore they could not believe, because that Esaias said again, He hath blinded their eyes, and hardened their heart; that they should not see with eyes, nor understand with their heart, and be converted, and I should heal them. -그러므로 그들이 믿을 수 없었던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말하기를 그분께서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눈으로 보아서는 안 되게 하시고, 마음으로도 깨닫지도, 회심하지도 그리하여 나로 그들을 치유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하였느니라." (12:39-40). 불신은 자기증식과정(self-propagating)을 거칩니다. 과장되지 않은 구약에서의 한 예는 파라오에 대한 예인데,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실 때가 될 때까지, 그의 마음을 계속해서 완악하게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이제 유사한 행위의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회개를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삶에서는, 드디어 그들이 회개할 수 없는 때가 옵니다.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불신은 이사야에 의해서 분명히 예언되었습니다. 그는 그의 사역의 응하여 그 자신의 생애에서 그것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데에 가장 큰 걸림돌인 자아(自我)의 문제에 본질적으로 접근하십니다.

➯ 로마서 5:19 For as by one man's disobedience many were made sinners, so by the obedience of one shall many be made righteous.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의롭게 되리라

5:18 Therefore the Jews sought the more to kill him, because he not only had broken the sabbath, but said also that God was his Father, making himself equal with God.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주님을 더더욱 죽이려고 하니, 이는 주께서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당신의 아버지라고 말함으로써 당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겼기 때문이었더라.
19. Then answered Jesus and said unto them, Verily, verily, I say unto you, The Son can do nothing of himself, but what he seeth the Father do: for what things soever he doeth, these also doeth the Son likewise. 그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나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은 보나니,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이나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 The Lord spoke next of the father and the Son (5:19-24). The rage of the Jews at his claim to be equal with God did not deter the Lord. He was "the truth" and did not shrink from proclaiming that truth. He spoke now of the unique relationship he had with the Father...
그 다음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 (the father and the Son)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5:19~24). 주님이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그분의 주장에 대한 유대인들의 격노도 주님을 저지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진리”이심으로 그 진리를 선포하는 데에 위축되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맺고 있는 독특한 관계를 말씀하셨습니다...

❖ As Son, there was the question of his loyalty (5:19) within the godhead, the loyalty of the Son to the Father (5:19). He said, "Verily, verily 〔we should note this solemn affirmation〕, I say unto you, The Son can do nothing of himself, but what he seeth the Father do: for what things soever he doeth, these also doeth the Son likewise." There was no independence, no friction, between the members of the godhead. But there was more to it than that. The Son of God had become the Son of man. And, as man, though he still possessed all the attributes and properties of deity, he did not use them except at the behest of the Father. That is what is meant by the statement, "The Son can do nothing of himself." The thought of acting in independence of God was a foreign thought, a sinful thought, a satanic thought—the thought at the heart of sin. Satan had used this thought both in the temptation of Adam and Eve and in the temptation of the Lord in the wilderness.
아들로서, 하나님의 신격 안에서 아들로서의 그분의 충성의 문제 (the question of his loyalty)(5:19)가 있습니다— 아버지께 대한 아들의 충성입니다(5:19). 그분은 "Verily, verily [we should note this solemn affirmation〕, I say unto you, The Son can do nothing of himself, but what he seeth the Father do: for what things soever he doeth, these also doeth the Son likewise. -진실로 진실로 [이 엄숙한 확언(確言)에 우리는 주목하여야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나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은 보나니,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이나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기 때문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신격의 구성원 사이에는 독립도 알력(軋轢)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것보다 더한 그 이상의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이 사람의 아들(the Son of man)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신성의 모든 속성과 자질을 여전히 가지셨지만, 인간으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 없이는 그것들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The Son can do nothing of himself. -아들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나" 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여 행동한다는 생각은 이질적인 생각이며, 죄악이 가득한 생각이고, 사단적인 생각입니다— 바로 죄의 중심부에 있는 생각입니다. 사단은 이 생각을 아담과 이브를 둘 다 유혹 할 때 사용했고, 그리고 광야에서 주님을 시험할 때 사용했습니다.

❖ The Lord could have put it like this: "While I, as God, am never anything less than God, so I, as man, am never anything more than man." He was here to make all that he was as man available to all that the Father was as God, so that all that the Father was as God might be available to all that he was as man. Independence was impossible. Perfect deity was enshrined in perfect humanity. This was something Jesus' opponents never grasped.
주께서는 다음과 같이 끝을 맺으셨을 수도 있으셨습니다. "하나님으로서 나는 하나님보다 모자라는 것이 결코 없지만, 마찬가지로 나는 인간으로서 인간보다 결코 더한 것이 없노라." 그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그가 인간으로서 모든 것을 하나님이신 아버지께 모두 유용한 것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고,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하나님으로서 모든 것이 인간인 그에게 모두 유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독립은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완벽한 신성(神性)은 완벽한 인간성(人間性)에 고이 간직 되어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대적 하는 자들이 결코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어둠은 主님의 빛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우리가 主께 복종하고 있는 한 세상은 主님의 빛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1Jn.4:4 Ye are of God, little children, and have overcome them: because greater is he that is in you, than he that is in the world. 어린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느니라.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시기 때문이니라.

이 땅의 어둠의 세력이 아무리 빛이 비취는 것을 방해 할지라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펴나가 실뿐입니다— 우리안의 세상보다 더 크신 분을 통해서 세상을 누르고 당신의 뜻을 펴나가실 뿐입니다.


He came in order to be what he was
He had to be what he was in order to do what he did
He had to do what he did so that we might have what he has
we have to have what he has in order to be what he was


우리가 받은 것은 그분의 생명이고 그 분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과 같게 된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맞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싸움은 이미 이긴 싸움입니다.

단지 우리가 오락가락하는 것은 우리자신을 아직도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主님을 통한 하나님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님의 원리를 깨달아 가게 됩니다. 우리가 깨닫게 되면 될 수록, 가까이 따르면 따를수록, 우리는 강해집니다.

"We have to have what he has in order to be what he was." ― 이것이 바로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이것을 깨달아 가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