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일  :  2011.8.18
설교제목  :  우리가 받은 생명은
성경구절  :  요한복음 5장 & 11장
설교자  :  염재현
설교내용

2011 夏 [III] John 5 & 11 ' 우리가 받은 생명은 '

1:4 In him was life; and the life was the light of men. 그 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 하나님의 개입

 빛 이심을 증거 하십니다.

9:1 And as Jesus passed by, he saw a man which was blind from his birth.
그리고 예수께서 지나가시다가, 태어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을 보시니,
2. And his disciples asked him, saying, Master, who did sin, this man, or his parents, that he was born blind? 제자들이 주께 물어 말씀드리기를, 선생님, 누가 죄를 지어 이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입니까? 이 사람이니이까, 아니면 그의 부모이니이까? 하니
3. Jesus answered, Neither hath this man sinned, nor his parents: but that the works of God should be made manifest in him.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이 사람이 죄지은 것도 아니요, 그의 부모도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일이 그의 안에서 분명히 드러나게 하기 위함이라.

❖ It was a deliberate (9:3b-5) case, planned in heaven with a specific divine purpose in mind. Its first was to reveal God's touch (9:3b) in a human life: "That the works of God should be made manifest in him."
그것은 특정한 하나님의 목적을 생각하고 하늘에서 계획된 의도적인(deliberate)인(9:3b-5) 경우였습니다. 먼저 그것은 인간의 삶에서 하나님의 개입을 들어내기 위해서 (to reveal God's touch)입니다(9:3b). "That the works of God should be made manifest in him. -하나님의 일이 그의 안에서 분명히 드러나게 하기 위함이라."

4. I must work the works of him that sent me, while it is day: the night cometh, when no man can work. 때가 낮일 동안에 나는 나를 보내신 분의 일들을 해야 하리라. 밤이 되면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As long as I am in the world, I am the light of the world.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라, 고 하시니라.
6. When he had thus spoken, he spat on the ground, and made clay of the spittle, and he anointed the eyes of the blind man with the clay, 주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땅에 침을 뱉어 그 침으로 진흙을 만들어 그 소경의 눈에 그 진흙을 바르시고는
7. And said unto him, Go, wash in the pool of Siloam, (which is by interpretation, Sent.) He went his way therefore, and washed, and came seeing. 그에게 이르시되, 가서 실로암 못에서 씻으라, 고 하시니라 (실로암은 해석하면, 보냈다, 라는 뜻이라). 그는 그리하여 가서, 그리고 씻고, 그리고 보면서 왔더라.

35. Jesus heard that they had cast him out; and when he had found him, he said unto him, Dost thou believe on the Son of God? 예수께서 그들이 그를 쫓아내었다는 말을 들으시고, 그를 만나셨을 때, 그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느냐? 고 하시니
36. He answered and said, Who is he, Lord, that I might believe on him? 그가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그분이 누구시니이까? 주여, 내가 그를 믿고자 하나이다, 하니
37. And Jesus said unto him, Thou hast both seen him, and it is he that talketh with thee.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너와 말하고 있는 이가 그이니라, 고 하시니라.
38. And he said, Lord, I believe. And he worshipped him. 그러자 그가 말씀드리기를,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주께 경배하더라.

39. And Jesus said, For judgment I am come into this world, that they which see not might see; and that they which see might be made blind.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심판 때문에 나는 이 세상에 왔으니, 이는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눈멀게 하려 함이라, 고 하시니라.
40. And some of the Pharisees which were with him heard these words, and said unto him, Are we blind also? 그러자 주와 함께 있던 바리새인들 몇이 이 말씀을 듣고,
주께 말하기를, 우리도 소경이란 말인가? 라고 하니
41. Jesus said unto them, If ye were blind, ye should have no sin: but now ye say, We see; therefore your sin remaineth.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일 너희가 소경이라면, 너희는 죄가 없으려니와, 지금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본다, 고 말함으로, 너희 죄가 여전히 그대로 있느니라, 고 하시니라.

 예수그리스도는 세상을 비추시어 세상으로 하여금 죄를 보게 하시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셨습니다. 눈을 뜨고도 그 빛 속에서 드러나는 죄(罪)를 보기를 거부하는 경우, 그것은 스스로 의(義)롭다고 주장하는 바리새인이 되는 것이고 "눈뜬장님"이 되는 것입니다.


 생명이심을 증거하십니다.

11:3 Therefore his sisters sent unto him, saying, Lord, behold, he whom thou lovest is sick. 그러므로 그의 누이들이 주께 사람을 보내어 말씀드리기를, 주여, 보소서,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라고 하니라.
4. When Jesus heard that, he said, This sickness is not unto death, but for the glory of God, that the Son of God might be glorified thereby. 예수께서 그것을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이 병은 죽음에 이르지 아니하고, 단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니라.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고 하시니라.

20. Then Martha, as soon as she heard that Jesus was coming, went and met him: but Mary sat still in the house. 그때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자마자 나가서 주님을 맞았으나, 마리아는 여전히 집에 앉아 있더라.
21. Then said Martha unto Jesus, Lord, if thou hadst been here, my brother had not died. 그때에 마르다가 예수께 말씀드리기를, 주여, 만일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나의 오라비가 죽지 아니 하였으리 이다.
22. But I know, that even now, whatsoever thou wilt ask of God, God will give it thee. 그러나 나는 지금이라도 주께서 하나님께 무엇이든구하시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께 주실 줄 아나이다, 라고 하니
23. Jesus saith unto her, Thy brother shall rise again.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너의 오라비가 다시 일어나리라, 고 하시니라.
24. Martha saith unto him, I know that he shall rise again in the resurrection at the last day. 마르다가 주께 말씀드리기를, 마지막 날에 있을 부활에서 그가 다시 일어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라고 하니

❖ Martha accepted his words, understanding them as having some distant, future significance, and gave assent to the doctrine of resurrection―as we do, when confronted with the loss of a loved one. She said, "I know that he shall rise again in the resurrection at the last day" (11:24).
마르다는 어느 정도 먼 장래의 의미로 그것을 이해하고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에 직면했을 때에, 우리가 하듯이 부활의 가르침에 동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I know that he shall rise again in the resurrection at the last day -마지막 날에 있을 부활에서 그가 다시 일어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11:24) 라고 말했습니다.

25. Jesus said unto her,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he that believeth in me, though he were dead, yet shall he live: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고
26. And whosoever liveth and believeth in me shall never die. Believest thou this? 또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이것을 믿느냐? 고 하시니
27. She saith unto him, Yea, Lord: I believe that thou art the Christ, the Son of God, which should come into the world. 그녀가 주께 말씀드리기를, 참으로 그러하옵니다. 주여, 나는 주께서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나이다. 라고 하더라.

❖ The Lord, however, wanted Martha’s faith expanded (11:25-27). Note how the truth was conveyed.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that is, the Lord Jesus has the key to resurrection life, life in the body beyond death]; he that believeth in me, though he were dead, yet shall he live [that is, the Lord Jesus imparts spiritual life to those who are dead in trespasses and sins]; and whosoever liveth and believeth in me shall never die [that is, the Lord Jesus guarantees eternal life, life without end]. Believest thou this?
그렇지만 주께서는 마르다의 믿음이 넓혀지기를 바라셨습니다. 어떻게 그 진리가 전달되는지 주목 하십시오.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that is, the Lord Jesus has the key to resurrection life, life in the body beyond death]; he that believeth in me, though he were dead, yet shall he live [that is, the Lord Jesus imparts spiritual life to those who are dead in trespasses and sins]; and whosoever liveth and believeth in me shall never die [that is, the Lordta Jesus guarantees eternal life, life without end]. Believest thou this?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즉 주 예수께서는 죽음을 넘어 몸 안에 있는 생명, 곧 부활생명의 열쇠를 갖고 계십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고 [즉 주 예수께서는 불법과 죄 속에서 죽은 자들에게 영적 생명을 나누어 주십니다] 또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즉 주 예수께서는 영원한 생명, 즉 끝없는 생명을 보장하십니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 Martha rose to the occasion: "Yea, Lord," she said, "I believe that thou art the Christ, the Son of God, which should come into the world" (11:27). She sidestepped the issue of whether she believed in the Lord’s claim to have mastery over death, to be the resurrection. But she did confess her heartfelt belief in Jesus as messiah of Israel and Son of God.
마르다는 난처한 상황에 대처하였습니다. "네, 주님," 그녀는 말했습니다. "I believe that thou art the Christ, the Son of God, which should come into the world- 나는 주께서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나이다" (11:27). 그녀는 죽음을 정복했다는 주님의 주장에 대해서 믿는지 아닌지 하는 문제에 대해서 회피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녀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 우리들은 정리된 doctrine 을 받아들이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과 마르다의 대화에서 主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은 정리된 doctrine을 받아들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主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받아들이는 것까지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박제된 믿음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39. Jesus said, Take ye away the stone. Martha, the sister of him that was dead, saith unto him, Lord, by this time he stinketh: for he hath been dead four days.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돌을 치워라, 고 하시니, 죽은 자의 누이인 마르다가 주께 말하기를, 주여, 죽은 지 나흘이 되었기에 지금은 그에게서 악취가 나나이다, 라고 하니

❖ People were stunned by this command, the first intimation that Jesus intended to do something out of the ordinary. Martha, especially, was shocked. "Lord," she said, "by this time he stinketh: for he hath been dead four days" (11:30b). She misunderstood his purpose, his words about being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She thought he wanted to view the body of his friend. Such a thing was no longer possible. It was unthinkable. Decay had set in.
사람들은 예수께서 보통을 뛰어넘는 어떤 것을 하시려는 의도를 첫 번째로 암시하는 이 명령에 놀랐습니다. 특히, 마르다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Lord, by this time he stinketh: for he hath been dead four days -주여, 죽은 지 나흘이 되었기에 지금은 그에게서 악취가 나나이다," 라고 말했습니다.(11:30b). 그녀는 그분의 목적, 그분의 부활과 생명의 실제에 관한 말씀을 잘못 이해했습니다. 그녀는 그분이 친구의 시신을 보기 원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와 같은 일은 이미 가능치 않았습니다. 그것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부패가 시작되었습니다.

40. Jesus saith unto her, Said I not unto thee, that, if thou wouldest believe, thou shouldest see the glory of God? 예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네게 말하기를 만일 네가 믿으면, 네가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고 하시니라.
41. Then they took away the stone from the place where the dead was laid. And Jesus lifted up his eyes, and said, Father, I thank thee that thou hast heard me. 그러자 그들이 죽은 자가 뉘여 있는 곳에서 돌을 치우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말씀하시기를, 아버지시여, 나를 들어 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And I knew that thou hearest me always: but because of the people which stand by I said it, that they may believe that thou hast sent me. 그리고 아버지께서 항상 나를 들어주시는 것을 내가 알았으나,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둘러 서 있는 사람들 때문이오니, 그들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라고 하시니라.

43 And when he thus had spoken, he cried with a loud voice, Lazarus, come forth. 그리고 그와 같이 말씀하시고는, 주께서 큰 소리로 외치시기를, 나사로야, 나오너라, 고 하시니
44. And he that was dead came forth, bound hand and foot with graveclothes: and his face was bound about with a napkin. Jesus saith unto them, Loose him, and let him go. 죽었던 자가 나오는데, 손과 발은 수의로 묶여지고, 그의 얼굴은 수건으로 싸여진 채로였더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그를 풀어 주어 다니게 하라, 고 하시니라.

➣ The voice of command was the last stage of the action. Jesus' word had calmed the sea; now it called the dead back to life. It was a sample of the fulfillment of His own word: "The hour is coming, and now is, when the dead shall hear the voice of the Son of God: and they that hear shall live." (5:25). Likewise, Paul, in teaching concerning the ultimate resurrection of the believer, speaks of "the voice of the archangel" (1Thess. 4:16). The call of Jesus was a shout of command from the master of death. The response was electric. "He that was dead came forth, bound hand and foot with graveclothes: and his face was bound about with a napkin" (v.44). The Jewish system of preparing a body for burial provided for swathing it in bandage like wrappings from the armpits to the feet, leaving the shoulders bare, and with a cloth ("napkin") wrapped around the head. Such enswathement would effectively prevent any ordinary means of locomotion on the part of Lazarus. The only explanation of his appearance at the door of the tomb is that the power that galvanized him into life brought him forth to the door, so that Jesus could say, "Loose him, and let him go" (v.44).
그 명령하시는 목소리는 그 행동의 마지막 단계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바다를 잠잠하게 하셨고, 이제 그 말씀은 죽은 사람을 삶으로 다시 불러냈습니다. 그것은 "The hour is coming, and now is, when the dead shall hear the voice of the Son of God: and they that hear shall live.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고 있나니 바로 지금이라. 듣는 자들은 살리라."(5:25) 라는 그 분 자신의 말씀을 이루시는 본보기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은 믿는 사람들의 궁극적인 부활에 관한 가르침에서 "the voice of the archangel -대천사의 음성"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데살로니가전서 4:16). 예수께서 부르시는 것은 죽음을 지배하시는 분으로부터 나오는 명령의 외침이었습니다. 그 반응은 전격적이었습니다. "He that was dead came forth, bound hand and foot with graveclothes: and his face was bound about with a napkin -죽었던 자가 나오는데, 손과 발은 수의로 묶여지고, 그의 얼굴은 수건으로 싸여진 채로였더라." (v.44). 시신을 장사지내기 위해 유대인들이 준비하는 방법은 어깨는 그대로 놔두고 겨드랑이 밑에서부터 발끝까지 붕대로 감아 포장하듯이 준비하는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머리는 천으로 감쌌습니다. 이와 같이 붕대로 감싼 것은 나자로로 하여금 정상적인 방법으로 움직이는 것은 실제적으로 할 수 없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가 무덤의 문에 나타난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에게 전류를 통한 듯이 활기를 불어 넣어 생명으로 이끈 힘이 그를 문으로 이끈 것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Loose him, and let him go -그를 풀어 주어 다니게 하라" 고 말씀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v.44).
 (Merrill C. Tenny)

 主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에게 (Satan의 속임으로 잃은) 그분의 생명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서 오신 것이고 그것을 믿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5:25 Verily, verily, I say unto you, The hour is coming, and now is, when the dead shall hear the voice of the Son of God: and they that hear shall live.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고 있나니 바로 지금이라. 듣는 자들은 살리라.
26. For as the Father hath life in himself; so hath he given to the Son to have life in himself; 이는 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생명을 지니신 것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시어 그자신 안에 생명을 갖게 하셨음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갖고 계신 생명은 죽은 자들도 듣고 다시 일어나는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그 생명을 또 나누어 주시는(impart)것입니다.

❖ We have life because we received it from our parents, who received it from their parents. Life is not spontaneously generated. There can be no life without antecedent life. Life is the monopoly of God. All the abundant varieties of life we discern on this planet are his invention. Each form of life is transmitted by divine law, each kind "after its kind"―as is so emphatically declared in Genesis 1, where the expression occurs ten times.
우리는 부모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았기에 생명을 갖고 있고, 부모님은 이를 그분들의 부모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생명은 자연 발생적인 것이 아닙니다. 선행(先行)되는 생명이 없이는 생명이 있을 수 없습니다. 생명은 하나님만의 전유물입니다. 이 지구상에서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모든 생명의 풍부한 다양성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각기 다른 생명의 형태들은 하나님의 법칙을 따라 각각 "그 종류에 따라 (after its kind)" 유전된 것입니다―이 표현은 창세기 1장에서 열 번이나 사용되면서 강력하게 선언된 것입니다.

❖ But the life the Lord Jesus has is not like that at all. He is "the only begotten of the Father" (1:14), begotten but not created. The Father has bestowed on the Son the divine characteristic of having life in himself: eternal, uncreated life. The very terms Father and Son imply coexistence. For instance, when my first child was born, I became a father. Before that time I was not a father. My fatherhood originated at the same time as the child's relationship to me originated. God could not be the Father without the Son; the Son could not be the Son without the Father. The Father and the Son enjoy the same kind of life.
그러나 주 예수께서 갖고 계신 생명은 그것과 전혀 같지 않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독생자”(1:14)이신데, 창조된 것이 아니고 독생자이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자신 속에 가지고 있는 영원하고 창조되지 않은 생명인 신성의 특성을 주셨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바로 그 말은 공존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내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나는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나는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나에게 아이와의 관계가 생김과 동시에 나의 아버지 노릇이 시작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 없이는 아버지가 되실 수 없으셨고 아들은 아버지 없이 아들이 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같은 종류의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 We cannot grasp the eternal dimension because we are creatures of a time dimension. We express our mode of existence in three tenses of time. We say, "I was, I am, I will be." God does not express himself like that at all. He say, "I am, I am, I am." Because of our time-space limitation we cannot grasp the eternal nature of the godhead. We cannot comprehend one who had no beginning, one who is eternal and uncreated, one who has life in himself. Whatever it means for the Father to have life in himself, it means for the Son to have life in himself. The fatherhood of God the Father and the sonship of God the Son are of equal, eternal duration. Yet in some way, beyond human comprehension, the Father, as the Father, imparts the right to have life in himself to the Son, as the Son, and the Son as the Son receives the right to have life in himself from the Father as the Father.
우리는 시간의 차원에 살고 있으므로 영원한 차원을 완전히 파악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존재의 방식을 세 가지 시제로 표현 합니다. “나는 ~였고, ~이고, ~일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자신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고,~이고, ~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적 제약 때문에 하나님의 신격(神格)의 영원한 본질을 파악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시작이 없으시고, 영원하고 창조되시지 않으시고, 그 자신 안에 생명을 소유하신 분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그 자신 안에 생명을 갖고 계시다라는 의미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든 간에, 아들도 그 자신 안에 생명을 갖고 계심을 의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아버지자격과 하나님 아들의 아들자격 동일하고 영속되는 관계입니다. 그럼에도 어떤 면에서는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것이지만,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자신에게 있는 생명을 아들에게, 아들로서, 갖게 하는 권리를 나누어 주고(impart), 아들은 아들로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아버지 안에 있는 생명을 그 자신 안에 가질 권리를 받은 것입니다.

 ❖ Jesus said, "I am the life."(14:6). The word is zoe, life in all its forms from the life of God on down to the life of the simplest microorganism.... The word was first used by the Lord when speaking of the two gates, the two ways, and the two destinies: "Strait is the gate, and narrow is the way, which leadeth unto life, and few there be that find it" (Matthew 7:14). The Lord used the word when assuring Martha that her brother would live again. "I am the resurrection," he said, "and the life" (11:25).
그분은 "I am the life. -나는 생명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단어는 zoe 인데,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가장 단순한 미생물의 생명에 까지 이르는 모든 형태의 생명을 말합니다. 그분의 생명은 죽음의 정반대에 있는 것으로서, 부활의 생명이고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단어는 주님에 의해서 두개의 문, 두개의 길, 그리고 두개의 운명에 대해 말씀하실 때 처음으로 사용되었습니다. "Strait is the gate, and narrow is the way, which leadeth unto life, and few there be that find it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그것을 찾는 자가 적기 때문이니라." (마태복음 7:14). 주님은 마르다의 동생이 다시 살아나리라고 확신을 주실 때 그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분은 "I am the resurrection, 나는 부활이니라,"고 말씀하시고는 "and the life -그리고 생명이니라,"고 하셨습니다(11:25).

✎ zōē=life in all its manifestation; from the life of God down to the lowest vegetable. It is life in activity, and thus especially is the opposite of death. It involves resurrection life and eternal life; and hence, as such, is the "gift of God" (Rom.6:23, 1John 5:12).
Rom.6:23 For the wages of sin is death; but the gift of God is eternal life through Jesus Christ our Lord. 이는 죄의 삯은 사망이나,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은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니라.
1Jn.5:12 He that hath the Son hath life; and he that hath not the Son of God hath not life.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Companion Bible / Appendix -170)

❖ We can be satisfied with nothing less than life―a full-orbed, vibrant, happy life down here, and then life eternal over there. That was Solomon's great quest, as recorded in the book of Ecclesiastes. The problem with Solomon, however, was that he thought he could find the answer "under the sun," in this world of time and sense.
우리는 생명으로만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 생명은 이곳 아래에서의 가득차고 활기가 넘치는 행복한 삶이고, 그리고는 저곳에서는 영원한 삶입니다. 그것은 전도서에 기록된 대로 솔로몬의 위대한 추구(追究)였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에게 있어서 문제는 시간과 감각의 이 세상 안에서, "under the sun, -해 아래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그가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 What he wanted was life―life more abundant, life for evermore. He discovered that this world can offer many pleasures and pursuits but it cannot satisfy and it cannot offer life. Solomon was haunted by the thought of death.
그가 원했던 것은 생명— 더 풍성한 생명, 영원한 생명이었습니다. 그는 이 세상이 많은 즐거움과 추구함을 줄 수 있지만, 이 세상은 만족시켜줄 수 없고 생명을 줄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솔로몬은 죽음에 대한 생각에 시달렸습니다.

❖ Life is God's monopoly. If we want to live life to the full down here and then enjoy life in a new and more thrilling dimension, with "joy unspeakable and full of glory" over there, we must come to Christ.
생명은 하나님께서 독점하고 계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여기 아래에서 충만한 삶을 살기를 원하고, 그 다음에 저 너머 위에서 "joy unspeakable and full of glory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충만한 영광"으로 새롭고 더 흥미진진한 차원의 삶을 즐기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께 나와야만 합니다.



He came in order to be what he was
He had to be what he was in order to do what he did

He had to do what he did so that we might have what he has
we have to have what he has in order to be what he was

그분은 그분이 가지신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피를 흘리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생명을 갖고 있으면 그분과 같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해 지기를 원하실 뿐 아니라 (1Pt.1:16), 그 거룩해 지는 길까지 열어 놓으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이 수양회를 마치고 떠나기 전에, 우리는 이것이 은혜라는 것을 묵상하고 감사하는 시간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